현대를 사는 우리 한옥

가회189번지

100년된 고택의 원형을 살려 한옥 한 채를 지었다. 2015년, 이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가회189번지에는

북촌의 고요한 분위기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겠다는 건축주의 바람이 담겨있다.

북촌의 문화를 담을 사랑채

가회189번지는 본래 건축주의 사랑채로 사용됐다. 그러다 무슨 연유인지 그만 공사가 중단돼 2년 이상 비워진 채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람이 드나들어야 목재가 뒤틀리지 않는 건축물의 특성상,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 가회189번지는 다행히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2년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세밀하게 지어진 한옥이었다.

건축주는 중단했던 공사를 재개햇다. 이곳을 북촌의 문화를 담는 사랑태로 공유하겠다는 결심이 선 상태였다. 대단한 결심이었다. 가회189번지는 건축주의 살림집과 연결되어 있는데 작은 소음에도 민원을 제기하는 북촌 주민과 달리 일부를 공유하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회189번지는 한옥을 경험하려는 이에게는 하루 묶을 수 있는 곳으로, 예술가에게는 갤러리 공간으로, 음악가에게는 공연장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좋은 목적에는 좋은 시도도 함께 따라야 가치가 높아진다. 건축주는 이름난 한옥업체에다 건축과 시공을 맡기지 않았다. 이제 막 한옥 건축과 시공에 뛰어든 젊은 일꾼에게 그의 집을 만지게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대 인테리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가 공간 구성을 할 수 있게 허락한 일이다. 참고로, 주로 한옥의 내부 인테리어는 완공 후 건축주가 직접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작은 한옥 한 채에 3개의 건축 회사가 참여하는 이 이색적인 작업에 뭔가 다른 한옥이 나올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건축주에게는 순수한 의도이자 모험에 가까운 결정이었고,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한옥을 그들의 손으로 지어보는 좋은 기회였다. 설계는 지유건축사사무소, 시공은 도담한옥,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는 신아키텍츠가 맡았다. 건축주 대신 가회189번지의 공사와 앞으로의 운영을 맡아줄 사람도 찾았다. 북촌 지역의 NGO 활동가이자 우리집 한옥 체험관의 박인숙 대표가 세곳의 건축회사와 함께 가회189번지의 공사에 착수했다.

한옥 한 채에 얽힌 기막힌 인연

한옥 한 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가회189번지도 마찬가지다. 이 중 에피소드 하나는 한옥을 짓는 목수, 도편수(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생각하면 된다)와 관련이 있다. 가회189번지의 시공을 앞두고 도담한옥이 개보수를 맡을 목수를 섭외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목수가 2년 전 가회189번지를 작업했던 인물이었다. 설계사, 시공사는 바뀌었어도 집을 직접 만지고 완성하는 도편수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연이다.

옛 원형을 그대로 살리는 대수선 공사

공사는 대수선으로 진행됐다. 대수선은 한옥의 뼈대를 살려 짓는 방식이다. 한옥의 원형 그대로가 유지되면서 한옥의 옛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는 장점이 있다. 집을 허무는 단계에서 기둥, 보, 서까래 등 골조는 옛 것 그대로 사용해 짓는다. 가회189번지는 골조 외에도 기존에 사용됐던 마감재나 인테리어 소품을 재사용해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담으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덕분에 지난 3월, 공사를 시작하여 7월에 완공된 가회189번지는 북촌 한옥마을에 다양성을 더하는 새로운 콘텐츠로 태어났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가진 익숙함과 이야기의 힘, 결코 경제적인 논리로는 환산할 수 없는 법이다.

100년 고택과 2015년의 만남

가회189번지는 ‘ㅁ’자 구조의 72.72㎡(22평) 한옥이다. 정원과 후원까지 합치면 대지 면적이 198.34㎡(60평)다. 대수선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기둥과 보의 목재 색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재의 썩은 부분을 제거해 비어 있는 부문은 강원도산 육송으로 채워 넣었다. 고재와 채워 놓은 육송의 색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대수선의 흔적이다.

완공된 가회189번지에는 구조의 변화가 따랐다. 집의 정중앙에 놓인 화장실을 안채로 옮겨 대청 마루의 공간을 넓게 확보하고 앞마당과 뒷마당이 연결되는 구조로 바꿨다. 공간과 시야가 넓어지면서 개방감 있는 1석2조의 효과를 얻게되었다. 넓어진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 옆에는 다이닝 키친과 안채가 있다.

부엌은 한옥의 구조에서 꼭 수정이 필요한 공간이다. 요리와 식사를 한 장소에서 해결하는 현대인의 생활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이 있던 자리가 그리 넓지 않은 편이어서 취사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성인 한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ㄷ’자 모양으로 싱크대와 조리대를 두어 동선을 편리하게 활용했고 다이닝 룸에는 입식 테이블을 두었다. 마루 맞은편, 별채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공간은 사랑방이다. 사랑방 역시 길쭉한 구조로 구석에 히노끼탕이 있는 퓨전 화장실로 설계했다.

수정된 한옥의 공간은 넓은 대청, 다이닝 키친, 안채와 사랑방, 두 개의 화장실, 마당, 후정으로 공간이 나뉜다. 한옥의 구성만 봐도 현대인의 주거 공간으로서 부족함 없이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한옥이 극복해야 하는 수납공간과 단열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수납 공간은 틈새 공간을 활용했다. 사랑방과 안채에 수납장을 짜고, 각 방에 있는 에어컨을 놓을 수 있는 수납 공간까지 만들었다. 한옥이 보완해야 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인 단열은 벽에 친환경 단열재를 차곡차곡 쌓은 것은 물론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해결했다. 특허 받은 이 우물마루에는 마루와 얇은 판넬 사이에 온돌이 있어 열이 흐르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겨울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한옥마루에서 겨울을 보내는 방도가 생긴 것이다.

한편, 가회189번지 건축주는 이 집의 활용 목적이 정확하다. 북촌의 각종 행사가 이뤄지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아키텍츠는 후정에 데크를 깔아 마루를 내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한옥에 데크라. 다소 생소한 조합이기는 하나 신선하다. 후정의 마루는 문화 행사의 작은 관객석으로 활용되거나 간단히 티를 마시는 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바로 가회189번지의 품격을 높여주는 고건축물 취병 담장이다. 작은 문 양 옆에 대나무로 엮어 있는 공간을 가르킨다. 취병 담장은 조선시대 궁에서 볼 수 있는 고건축 기술로 문화재 설계 경험이 있는 지류건축사사무소의 아이디어다. 후정에서 만나는 신과 구의 조화. 3개의 건축업체와 시공업체가 참여해 만든 시너지 효과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건축

골목도 하나의 건축이다. 가회189번지의 건축주는 서울시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담장을 만드는 방식이 아닌 예전 담장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했다. 흰색 회벽에 팥쥐색타일, 창살 모두 예전 그대로다. 60,70년대 풍의 외관에 80,90년대 유행했던 양옥집의 요소가 담장에 남아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다. 집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이 마감재들이 건축 부자재 시장에서는 절대 구입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요소가 북촌 마을의 공간을 구성하고 다른 한옥과의 차별성을 주며 더불러 시간을 축적하는 귀한 자료가 된다.

내부의 현대적인 조화도 눈에 띈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신아키텍쳐의 대표가 한옥에 모던함과 세련된 요소를 더했다. 문고리를 가죽 끈으로 매단 것이나 간접 조명을 사용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디테일하고 모던한 요소가 한옥에 잘 녹아든다. 가회189번지는 정책적으로 조성된 천편일륜적인 한옥도 아니며 특정한 시대만을 담고 있는 한옥도 아니다. 100년된 고택의 시간 위에 현재의 시간을 반영하고 미래 북촌의 시간을 담아낼 ‘진짜한옥’인 셈이다.

북촌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뜨내기처럼 한옥 별장에서 쉬고 가는 이들도 있고, 살림집으로 사는 이들도 있다. 아마 건축주는 가회189번지를 ‘생활 속 한옥’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우후죽순 생기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북촌의 보통 한옥으로, 북촌의 정체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말이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면 배가 된다.

9월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는 현재, 이곳은 한창 시간을 더하는 준비에 여념이 없다. 원래 이 집 대문에 달았다는 엔티크 조명 기구를 박대표가 보여줬다. 수리점에서 고쳐오는 수고가 있었다. 에디터가 보고 이 조명 기구를 촬영 전 고쳐 달았으면 좋았을 거라 아쉬워하자 그녀도 같은 마음이라 했다. 콘센트에 전기 코드를 연결하자 등에 쨍하게 불이 들어왔다. 가회동 189번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밝은 신호다.